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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브루크너는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교향곡, 종교음악, 모테트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풍부한 화성과 복잡한 폴리포니 리듬 그리고 유도동기, 긴 연주시간으로 유명하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낭만파의 최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브루크너는 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교사 보조로서도 일했고 마을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고, 결국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생전에 그는 오르가니스트로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즉흥 연주에 능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여러 스승에게 작곡이나 대위법 등을 배워나갔으며, 빈 음악원과 빈 대학 등에서도 교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 11개의 교향곡과 3개의 미사, 테 데움 등의 종교 음악을 작곡했다. 그러나 생전의 그의 음악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는 그가 바그너의 추종자로 알려져 브람스를 신봉하는 많은 비평가의 무조건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주변에조차도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뢰베, 프란츠와 요제프 샬크 형제 등은 항상 그의 곡을 청중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한다는 명분으로 브루크너의 곡을 개작하도록 압박했고, 이런 압박이 브루크너 자신의 유악함 내지 꼼꼼함이 덧붙여져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수많은 개정 원고가 존재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루크너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의 7번 교향곡, 8번 교향곡, 테 데움의 공연에서 성공을 맛볼 수 있었으나 너무나 늦은 성공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빈에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그의 유언에 따라 지금도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밑에 안장되어 있다.<위키백과 출처>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지만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다"

<지휘 거장 브루노 발터>

브루크너의 음악과 인생

유명한 9개의 교향곡, 3개의 대 미사곡, 진혼곡, Te Deum, 합창곡, 실내악곡, 피아노 등의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 하였음.

1824년 9월 4일 린츠 근교에서 출생

1835년(11세) 봄 오르간 배우기 시작.

1837년(13세) 6월 아버지 사망/ 사망 후 상트 플로리안 원장 추천으로 수도원 성가대에 입단 함.

1840년 1841년 사이 교사연수과정을 이수함.

1841년(17세) 1843년 까지 빈트하크에서 보조교사로 생활.

1843년 1845년 까지 크론스토르프 보조교사로 생활.

1945년(21세) 상트 플로리안에서 교편을 잡음(1855년까지)

1848년(24세) 잠정적으로 수도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2년간).

1851년(27세) 수도원 오르가니스트로 정식으로 임명 됨.

1850년 린츠 교사연수과정에 다시 참여 함.

1855년(31세) 고등학교 교사 자격증 취득.

1855년(31세) 1861년 지몬 제히터에게 화성,대위, 카논, 푸가기법을 61년까지 배움(방문,서신 등으로)

1856년(32세) 린츠 성당 오르가니스트가 됨(1968년 빈으로 옮기기 까기 연주 함)

1860년(36세) 린츠 성당 프로진 (Frohsinn)성가대 지휘자 시작.

(1868년까지 지낸 것으로 보임)1861년에는 그의 곡 Ave maria 연주 함.

1861년(37세) 린츠 가극장 악장 오토 키즐러에게 2년간 관현악법과 음악형식을 배움.

                          키즐러가 연주하는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듣고 감명을 맏아 바그너를 추종하기 시작 함.

                          바그너 영향으로 본격적인 교향곡 작곡가로 들어섬.

1863년(39세) 교향곡 00번 완성(오토 키즐러에게 수학 중, 스스로 습작으로 기록 함)

1864년(40세) 미사곡 D moll 작곡.

1865년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기위해 뮌휀 방문. 이곳에서 바그너를 만나 따르게 됨.

1866년(42세) 교향곡 1번 완성(1877년 1차 개정<린츠판>, 1891년 2차 개정<빈판>)

1867년(43세) 스승 제히터 사망. 브루크너 신경쇠약에서 서서히 회복중에 있었음.

1867년(43세) 빈 호프카펠레 오르간 연주자 자리에 실패.

1868년(44세) 빈에서 생활을 시작함.

                            스승 제히터 후임으로 빈 음악원에서 화성법, 대위법, 오르간을 가르침.(91년 퇴직)

                            임시직으로 무보수의 궁정 오르간 연주자로 일함.

1869년(45세) 프랑스 방문. 오르가니스트로 초청받아 국제행사에서 연주함

                            브루크너는 그 당시 오르가니스트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었음

1869년 교향곡 0번 완성(간단한 개정 후 완성)

1870년 빈 상트 안나성당에서 피아노 가르침(1874년 까지)

1871년(47세)  영국 국제 오르간 콩쿠르 우승? 초청 받아 6회 연주 함. 세계적 명성을 얻음.

                           영국 로열 알버트 홀 연주

1872년(48세) 교향곡 2번 완성

1874년(50세) 교향곡 4번 완성(1878년 1889년 사이 대대적 개정작업 함) 1881년 초연.

1875년(51세) 빈 음악대학에서 정식으로 인정 받음(작곡이론). 학장 한슬리크로 인해 지연 되었었음.

1876년 5번 교향곡 완성.(1878년 하스판/ 1878년 노바크판<주로 사용>)

1894년 초연 제자 프란츠 샬크가 지휘함(1896년 샬크판)

1878년(54세) 빈 궁정 오르가니스트 임용.

1879년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 함

                            (작곡가 생상, 프랑크, 오베르, 구노 연주회에 참석, 오르가니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

1880년(56세) 1890년 까지 자신의 연주 관람을 위해 몇차례 독일을 방문 함.

1881년(57세) 교향곡 6번 완성(1883년 1차(2,3악장),1899년 2차 전 악장 연주-말러지휘 )1901년

1883년(59세) 교향곡 7번 완성(1884년 독일 라이프치히 오케스트라 초연으로 대성공을 거둠)

1886년(62세) 왕실로 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직접 연금을 수령받게 됨.

1887년(63세) 교향곡 8번 완성(지휘자 독일 헤르만 레비의 초연 거절로 수정작업 후 1890년 개정판 완성)

1891년(67세) 빈 대학교로 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 받음.(대학에 교향곡 1번 헌정함)

1894년 교향곡 9번 1악장에서 3악장 그리고 4악장 코다 전 까지만 써진 미완성으로 마침.

                              1903년 뢰베 지휘로 초연 됨(작곡가 사후 지휘자 뢰베 등 개정과 수정이 많았던 작품) ​

1896년(72세) 10월 11일 왕이 하사한 빈의 벨베데레 궁정에 있는 한 방에서 생을 마침.

안톤 브루크너

1824년 9월 4일 - 1896 10월 11일(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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